기준(Ⅱ) : 두가 유적은 기원전 제2천년기 동안 토착 도시의 탄생?발전한 역사를 보여 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두가 유적에는 모든 구성 요소를 갖춘 완벽한 고대 도시 유적이 보존되어 있으며, 이는 토착적인 기초에 로마 시대 도시계획을 적용한 훌륭한 사례이다.
기준(Ⅲ) : 리비아 어, 카르타고 어, 그리스어, 그리고 무엇보다 라틴 어로 씌어진 2,000점 이상의 비문으로 구성된 두가의 중요한 금석학 컬렉션은 리비아어의 판독과, 누미디아의 사회 및 생활, 그리고 로마 식민 정치와 로마의 도시 조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2세기 반에 걸쳐 자신들의 전통 제도에 따르는 이주 토착민과 로마 방식에 따르는 카르타고의 로마 식민지에 속한 로마 시민들은 공식적?법적으로 별개이면서 같은 도시와 같은 영토 안에 공존하였다. 두 공동체는 도시의 발전과 번영에 똑같이 참여하였다. 넓은 누미디아 도시 조직이 남아 있는 한편, 두가는 그렇게 로마의 기념비적인 도시의 양상을 갖추었다. 이런 점에서 두가는 누미디아 왕조의 통치하와 로마 제국 초기의 마그레브 도시들 가운데 대표적인 예이다. 북아프리카의 비슷한 유적지와 비교하면 로마 통치 시기 및 그 이전의 두가 유적들은 놀랍도록 완벽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유적들은 로마 시대 작은 지방 도시의 일상생활을 뚜렷하게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