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양의 수도성곽 |

북한산성 소개

배경과 역할

근세기 동북아시아의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의 수도 한양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국왕 숙종의 명령으로 1711년 축성한 산성 유사시 국왕, 행정부, 도성민이 모두 함께 이동하여 항전할 수 있는 입보성의 역할로 계획되었고, 한양의 북쪽에 있는 천혜의 자연요새인 북한산에 위치.

오늘날까지의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삼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과 승군이 합심하여 북한산의 험준한 계곡과 능선을 따라 16개의 성문과 전체 길이 11.6㎞의 성벽을 단 6개월 만에 쌓았다. 내부 면적은 약 5.2㎢으로 조선시대 축조된 산성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에 대규모의 크기를 자랑한다.

내부에는 국왕의 지휘부를 비롯하여 관리와 운영을 맡았던 다양한 성내 시설이 존재하였다. 유사시 임금이 머물며 전쟁을 지휘하고 행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북한행궁, 산성의 관리와 운영을 담당한 관성소, 중앙 군영인 삼군문의 훈련과 무기를 보관한 훈련도감 유영ㆍ금위영 유영ㆍ어영청 유영, 유사시를 대비하여 군량미를 보관한 상창ㆍ중창ㆍ하창, 성내의 지휘 시설인 동장대ㆍ남장대ㆍ북장대, 승군 대장이 머물면서 방어를 도왔던 승영사찰 중흥사도 대표적인 성내시설이다. 1745년 승군대장 성능이 작성한 『북한지』에는 성내 시설의 현황과 위치를 자세히 기록하여 북한산성의 입보성 역할을 명확히 증명해준다.

축성 이후에도 입보성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1808년 국왕 순조에 명령으로 제작된 『만기요람』을 비롯해 각종 고지도에서도 북한산성이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입보성으로 기능하고 인식하였을 알 수 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선의 군제가 신식으로 개편되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산성은 축성 당시의 기능과 역할은 잃어버렸지만, 현재는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국가유산청, 고양시, 서울시가 함께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이 미래세대에도 전승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보호ㆍ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 북한산의 봄
  • 북한산의 여름
  • 북한산의 가을
  • 북한산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