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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노주석의 서울 택리지 테마기행<9> 지명(상) (사진첨부)

	    		

* 출 처 : 서울신문

* 날 짜 : 2014.07.14 (월)

 

북악인가 백악인가...조선 초기부터 명실공히 백악산 

      

    

 

경복궁 뒤에 피지 않은 한 떨기 모란 꽃송이처럼 솟구친 수려한 산의 이름은 둘이다.

백악(白岳)이기도 하고 북악(北岳)이기도 하다. 조성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이 산을 놓고 면악, 공극산 등 다양한 지명이 등장하지만 결국 두 개의 이름만 살아남았다. 이 산의 이름이 중요한 것은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도록 결정지은 산이기 때문이다. 이 산이 있었기에 새로운 나라의 수도를 송악(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우리는 이런 중요한 산 이름을 별 생각 없이 극과 극을 달리는 두 개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백악인지 북안인지 헷갈린다면서 뭉뚱그려 북한산이라고도 부른다. 곡할 노릇이다.

      

청화산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조가 중 무학(무학대사)를 시켜 도음 터를 정하도록 하였다. 무학이 (삼각산)백운대에서 맥을 따라 만경대에 이르고, 다시 서남쪽으로 비봉에 갔다가 한개의 돌비석을 보니 '무학오심도차(無學誤尋到此 : 무학이 길을 잘못 찾아 여기에 온다)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도선(신라 도선국사)이 세운 것이었다. 무학은 길을 바꿔 만경대에서 정남쪽 맥을 따라 바로 백악산 밑에 도착하였다. 세 곳 맥이 합쳐져서 한 들로 된 것을 보고 드디어 (경복궁)궁성 터를 정하였는데, 곧 고려 때 오얏(자두나무)를 심던 곳이었다"고 한양천도 당시 주산 백악과 명당 경복궁 택지에 얽힌 일화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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